자유의 언덕 요새 보는 것






아침부터 격하게 등산을 하고 와서 살짝 나른한 상태로 이 영화에 대한 썰을 풀자니 더 나른해진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설렜고, 그럴 거라는 걸 알면서도 보고 나서 밀려오는 덜 정돈됨과 찝찝함의 감정이 익숙했다. 대놓고 '시간'이라는 책을 영화 속에서 들이밀며 억지로 억지로 시간 순으로 사건을 재배치해보려는 관객들을 놀리는 듯한 장치는 실소를 머금게 했다. 첫 컷부터 대놓고 줌아웃을 뽝뽝 쓰는 연출까지. 모든 게 참 홍상수스러웠다.

그의 영화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는 재미 하나. 김의성 아저씨와 정말 잠깐 출연한 이민우는 찌질함의 극치를 달린다. 구수하게 한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코미디. 1시간 남짓한 상영 시간 속에 꽤나 많은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다. 사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남자, 영화 프로듀서인 남친과 카페 주인인 여친. 보기에는 '핫'해보이지만 실상은 별 것도 없는 커플. 유부남과 바람피는 20대 여자. 병을 고치기 위해 의사가 아니라 목사를 찾아간 중년 여성. 이 모든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정상으로 보이는 건 주인공 모리로 나오는 카세 료다.

하지만 그의 상황도 애매한 건 마찬가지. 2년 전 한국에서 만났던 여자를 잊지 못해 다시 한국을 찾고. 그 여자의 집 주위를 맴돌며 계속 기다린다. 만나는 한국인마다 그에게 관광차 왔는지 일 때문에 왔는지를 묻고 그때마다 모리는 어색하게 대답한다.

영화는 내내 우리에게 '시간'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 권이 모리의 편지를 떨어뜨리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는 알쏭달쏭하게 섞이고 그 후 영화는 모리가 편지를 모낸 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교묘하게 시간이 섞이게 보여준다. 관객은 배우들의 옷과 대사, 독백을 통해 시간을 맞춰볼 수는 있지만 굳이 그런 노력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어차피 그렇게 한다 해도 홍상수가 말하고 싶었던 바를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그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오히려 이런 게 아닐까. 그렇게 시간을 순서대로 맞추는 노력이야말로 부질없는 짓이라고. 우리는 지금을 살지만 가끔은 10년 전도 살고 바로 어제도 살고 아직 오지 않을 미래에서도 산다. 상상과 생각 속에서 얼마든지 다양한 시간의 변주는 가능하다. 지금 이렇게 타이핑을 하고 있지만 내 머릿속은 어제 이 '자유의 언덕'을 봤던 영화관으로 가득 차 있다. 어제를 살고 있는 셈이다.

다시 한국을 찾아온 카세 료도 2년 전의 시간에서 아직 살고 있기에 권을 찾으러 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