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간다] 쫄깃쫄깃 요새 보는 것





정신없이 살다보니 언제 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봤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일요일 저녁이었고 뭐하고 놀지 오빠와 고민 중이었다. 오빠 타이 여행 때문에 선글라스를 맞춰야 돼서 룩옵티컬에 들어갔다. 우리 학교 교직원이면 30%인가 할인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정보가 입수된 건지 직원은 그런 할인은 없는데여...라며 우릴 향해 측은한 썩소를 지었고 그때 마침 미친듯한 폭우가 쏟아졌다. 동남아 기후로 변해간다고는 하지만 눈앞에서 그런 비를 보니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정확히 그 때 날씨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주절주절 쓰고 있지만 결론은 그 비 때문에 어디 멀리 갈 생각을 접고 룩옵티컬 바로 옆에 있는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씨지비에 들어갔다는 것. 대학교 입학하고나서부터 (그곳이 '판타지움'이라 불리던 시절이다.... 영화관 앞에 떡하니 세워져 있던 반지의 제왕 간달프 할아버지의 흉상?석상?동상?이 생각난다. 이 나이에 벌써 추억팔이다....ㅅㅂ) 그곳에서 본 영화만 도대체 몇 편일까. 대학로를 떠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씨지비.

여튼 그렇게 들어가서 유일하게 둘의 취향 모두를 만족시키도록 고른 영화가 이선균, 조진웅 주연의 '끝까지 간다'였다. 은근히 오빠랑 영화를 보면 둘 다 좀 난해하고 어려운 영화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소위 예술영화니 독립영화니라고 불리는 것들. 씨지비에서는 지하 1층 무비꼴라쥬 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들. 둘 다 먹물도 아니면서 먹물인 척 하려고 굉장히 노력 중이라 그런 허세를 떤다. 그날은 그렇게 허세조차 떨 정신이 없었는지 무조건 고!를 외치며 이걸 봤다. 이선균의 액션이라.

뒷돈 받아먹으며 투철하게 살아온 강력반 형사 고건수. 어머니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경찰서에는 내사가 들이닥치고, ㅈ됐다 생각하며 미친듯이 밟아 경찰서로 가는 길에 누군가를 차로 치어버린다. 아무도 못 봤을 거라 생각하고 시체를 유기했는데 눈 떠보니 전화가 계속 울린다. 건수가 친 사람을 찾아내란다. 안 그러면 모든 걸 다 까발리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 전화. 미쳐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인 건수. 전화는 집요하게 계속 울리고, 건수는 결국 어머니 관 안에 숨긴 죽은 남자의 시체를 다시 꺼내러 어머니 묘지를 파낸다. 조금씩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건수와 그럴수록 더욱 압박을 가해오는 미지의 남자 박창민. 둘은 말 그대로 끝까지 간다.

아무 생각없이 쭉쭉 보고 나올 수 있는 영화. 분명 이선균이 연기한 건수라는 인물이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음에도 주인공이라 그런지, 아니면 조진웅이 연기한 박창민의 비주얼이 너무 쇼크쇼크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건수 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만든다. 스토리도 적당히 탄탄하고. 두 남자의 끈적끈적한 방바닥 액션 신은 꽤나 볼 만 했다. 웃음이 킥킥킥 터져나올 정도로. 그나저나 우리나라 영화에서 언제쯤 경찰이 괜찮은 존재로 나올 수 있는 건지. 고런 궁금증은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