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친구의 미학 요새 보는 것


생각해 보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꽤 흥행했던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보지 않았고 '용서받지 못한 자' 같이 유명한 웨스턴 무비도 보지 않았다. 아마도 이 '그랜 토리노'가 내가 본 이스트우드의 첫 영화인 것 같다. 왠지 이스트우드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2014년 발렌타인데이 저녁이다. 처음에는 '그랜 토리노'가 차 이름인 줄 몰랐다. 검색해 보니 1972년산 포드 자동차 브랜드더라. 극중에서는 포드 사에서 일했던 월트가 72년도에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든 차로 나온다. 그만큼 애착이 가고 소중히 여기는 차겠지. 그러한 만큼 과거와 전통에 대한 월트의 집착을 보여주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첫 장면부터 영화는 월트의 고집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아내의 장례식에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온 손녀를 보며 혀를 차고 옆집에 이사 온 몽족을 보며 아시아인이 왜 자기 나라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투덜거린다.(이에 몽족 할머니는 자기네 나라 말로 다른 백인들은 다 이 동네에서 이사 갔는데 넌 왜 혼자 아직도 살고 있니 라며 기세 좋게 맞대응한다. 물론 둘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ㅋㅋㅋ) 신부가 와서 교회에 다니자고 해도 다 싫단다. 고집불통 할아버지다. 거기다 집 밖에서 맥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며 신문을 보는 모습이라니. 전형적인 미국 백인이다.

영화는 월트가 그렇게 경멸해 마지 않던 옆집 몽족 남매, 수와 타오와 친해지면서 슬슬 궤도에 오른다. 타오는 자신의 사촌이 속해 있는 몽족 갱단의 협박에 못 이겨 월트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 실패한다. 그 일을 알게 된 타오의 가족이 월트를 찾아가 사과하고 벌로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하면서 타오와 월트는 조금씩 친해진다. 또 성격 좋은 수를 통해 몽족 파티에 초대받으면서 월트는 자신의 자식들보다도 더 대화가 잘 통하는 이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타오에게 직접 건축 일자리도 소개해 주고, 단골 이발사에게 데려가 남자들만의 대화(?)가 무엇인지도 가르쳐준다.


그러다 타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갱단에게 린치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월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갱단을 찾아가 다시는 남매를 건드리지 말라고 협박한다. 평생을 혼자만의 고집 속에서 외롭게 살아온 월트에게 수와 타오는 뒤늦게 찾아온 소중한 친구였다. 하지만 갱단이 그의 말을 들을 리 만무. 타오의 집에 총격을 가하고 수를 집단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월트는 자기의 오지랖 때문에 두 아이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복수에 나선다.


영화 초반 타오가 훔치려다 실패한 월트의 72년산 그랜 토리노는 결국 타오가 갖게 된다. 월트의 오랜 충견 데이지도 함께. 아픈 전쟁의 기억을 나이와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을 통해 치유해 가는 스토리는 꽤 감동적이고 매력적이다. 월트에게도, 수와 타오에게도 서로의 존재는 든든했을 터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여전히 이방인인 두 남매에게 다가온 전형적인 미국 백인 할아버지 월트. 두 조합은 서로에게서 많은 걸 배웠고 또 느꼈을 터다. 관객도 그랬다.



덧글

  • 츄투 2014/02/15 01:01 #

    고집스러웠던 리버테리안 할배가 조금씩 변화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더라ㅋㅋ 마지막에 제이미 컬럼 노래가 백미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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