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자본론이 영화 속에 요새 보는 것



뒤늦게 봤다. 문득 생각이 났고 시간이 넘쳐났고. 당시에는 왜 안 봤는지 이유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이걸 보고 '돈의 맛'을 봤더라면 좀 더 재밌었을 것 같아서 살짝 아쉬웠다. 요새 수양대군으로 다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정재의 훌륭한 몸과 재수없는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크게 어렵지도 않다. 직접적인 상징이나 대사가 많다. 정확히 이등분으로 나뉜 계급사회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혼 후 고깃집에서 일하며 살아가던 은이는 좀 더 돈을 잘 벌기 위해 엄청난 부잣집의 하녀(=가정부, 파출부, 보모)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훈(이정재)의 집은 어마어마하다. 집을 한 바퀴 다 돌기만 해도 충분히 운동이 될 것 같은 뭐 그런 넓이랄까.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이들 가족의 밥을 챙기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훈과 해라(서우)의 딸인 나미를 챙기는 것이 은이의 임무다. 해라는 곧 쌍둥이를 낳을 예정이다. 병식(윤여정)은 이 집에서 수십 년을 일한 또다른 하녀다. 최근에 아들이 사법고시에 통과해 검사가 됐다. 지긋지긋한 하녀 생활의 유일한 낙이다.

훈과 해라의 결혼생활은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둘의 대화나, 해라와 해라 모친의 대화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건 '돈'이 결부된 결혼이라는 것 정도다. 관객들도 쉽게 예측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훈의 어머니도 고 씨 집안에 시집와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훈의 형 얘기가 잠깐 언급되는데, 둘째 또는 그 밑이었을 것 같은 훈이 회장 자리에 오른 걸로 봐서는 훈의 어머니가 첫 부인이 아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독하게 버텨 훈을 지금의 자리에 앉혔다. 해라 모친은 해라에게도 그렇게 버텨야 한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해라는 어떻게든 훈과의 사이에서 많은 아이를 낳기 위해 애쓴다. 많은 자식이 자신과 훈을 연결시켜줄 것이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터다. 핏줄로 이어지는 계급이랄까.


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하지만 훈의 번식 본능은 해라 하나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훈 가족과 은이가 여행간 날 밤, 훈은 당연하다는 듯이 은이를 덮치고 은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훈을 받아들인다. 이 부분에서 은이의 생각이 잘 짐작되지 않는다. 훈을 이용해 신분상승을 꾀하려 훈을 받아들인 건지, 아니면 확연한 계급 차이의 위압감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건지 명확하지 않다. 둘 다일 수도 있는데, 신분상승을 꾀하려 했다면 두 번째 섹스를 할 때 은이의 말이 걸린다. 질내사정을 하려는 훈을 말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친구에게 얘기할 때는 자기도 그 날 훈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섹스를 나눌 때도 은이는 옷을 다 벗고 훈을 기다리고 있다. 임신까진 아니라도, 훈을 자신의 편으로 만듦으로써 어느 정도의 신분 상승을 꾀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병식은 둘의 행각을 눈치채고, 은이의 몸을 유심히 관찰한다. 전보다 은이의 가슴이 커졌다고 생각한 병식은 생존 본능에 이끌려 해라의 모친에게 훈의 외도를 얘기한다. 이를 용납할 수 없는 해라와 해라 모친은 2층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은이를 슬쩍 밀어 죽이려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은이는 살아남는다. 그러나 치료차 간 병원에서 임신 소식을 접하게 되고, 이 사실은 해라 모녀에게 전해진다. 모녀는 은이에게 1억을 주며 낙태를 하고 집을 나가라고 한다. 은이가 말을 듣지 않자 둘은 못된 방법을 쓴다.


영화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계급을 얘기한다. 훈의 가족으로 대표되는 저 꼭대기 계급과 은이로 대표되는 하층계급,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 말이다. 병식은 그 중간에 있는 것 같지만 별 수 없는 하층계급이다. 하층계급을 부리는 또다른 하층계급민일 뿐이다. 처음에 해라 모친에게 은이의 임신 사실을 알렸지만 마지막에는 은이를 이해하고 은이를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수십 년을 그 집에서 일해오며 신분상승의 욕구가 누구보다 컸을 병식은 결국 아들을 검사로 만들어 놓는다. 병식은 우리 조부모 세대를 대표한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거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어머니.

은이는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일반인을 상징한다. 영화 초반, 은이가 일하는 번화가에서 한 여자의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 그 전에 카메라는 부지런히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모습을 비춘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노래방에서 신나게 몸을 흔드는 젊은이들. 그리고 곧이어 여자가 건물에서 떨어진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나 자살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는다.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가 딱 그 모습일 거다. 그런 은이를 훈은 철저히 계급적으로 다룬다. 언제라도 자신이 원하면 가질 수 있는 존재다. 두 번째 섹스 이후 훈은 은이에게 돈을 준다.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게 아닌 것이다. 거기다 은이가 자신의 아이를 유산한 것을 알게 되자 태도가 싹 바뀐다. 자신의 핏줄이 없어졌으니 더 이상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진 것. 뒤늦게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 은이는 다시 훈의 집으로 들어간다. 큰 결심을 하고서.

그런 상징이 은은하게 보여지지가 않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나 여기 있소' 이렇게 그려져서 좀 투박한 느낌도 든다. 물론 적절한 조명과 인테리어, 색의 사용 등으로 영화 분위기 자체는 세련됐다. 음악도, 이정재가 마시는 와인도. 혹자는 이 영화가 너무 칸 영화제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느낌이 난다고 비판을 했다.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좀 더 은유적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참 임상수다웠다. 나미의 생일파티 날이다. 전혀 즐거워보이지 않는 나미의 뚱한 표정, 영어로 얘기하며 나미가 알지도 못하는 비싼 그림을 선물로 주는 훈, 그 옆에서 웃음기 하나 없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해라.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네 명의 하녀들. 그 중 하나는 외국인이다. ('돈의 맛'을 암시하는 것이었군....) 변한 것 하나 없는 부자들이지만 속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으니 그대들이여 너무 기죽지 말고 우리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자는, 통쾌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덧글

  • 로보 2013/10/02 01:17 #

    이게 바로 임상수식 영화지요. 평민들이 보고 싶어하는 대로 '부유층'을 보여주는.

    부유층의 리얼리티는 없어요. 그냥 '부유층 환타지'에요. <돈의맛>도 딱 그렇죠.

    자, 그럼 누가 속은 걸까요? 1. 우리 2. 임상수. 3. 부유층.
  • 코로로 2013/10/02 01:43 #

    좌파들 머릿속 부자인데,

    이런 부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게 함정이죠

    진짜 상상속 부자임

    아니, 맑스는 하녀 돌려먹으며 부자 친구한테 얹혀산 씹막장이니 세상을 그런식으로 파악했던걸지도
  • Bory 2013/10/02 13:43 #

    울 나라에 없는거지 딴데는 있을검다. 뭐 멕시코나 필리핀 정도..이미 계급이 딱 나눠진 그런 나라들..
  • 홍차도둑 2013/10/02 01:49 #

    이거 원작이 무려 세계 영화 평론가들 여럿이 뭉쳐서 만든 "죽기전에 보아야 할 영화 1001편"에 올라가 있더만요...
  • 여름눈 2013/10/02 04:22 #

    부자가 행복하지 않을거라는 판타지를 먼저 버려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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