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나라 요새 읽는 것




책을 충동구매하는 습관이 있는 나란 여자. 이 책도 그저께였나. 한겨레에 실린 임범 씨의 칼럼을 보고 퇴근길에 바로 알라딘에 들러 산 책이다. 중고서점이 생긴 이후부터 안 그래도 책 막 사는데 더 막 사게 됐다. 이거 하나만 사는 게 아니라 팬심으로 한창훈 씨의 소설도 하나 더 집어왔으니. 돈도 제대로 벌지도 못하면서 뭐하는 짓인지. 아오.

이 책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이 쓴 책이다. 이번에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 '가족의 나라'가 얼마 전에 개봉됐는데(몰랐다...OTL) 꼭 그 내용이라기보다는 전반적인 자신의 가족사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앞의 영화 두 개를 보지 않았어도 이 책을 읽는다면 양영희 감독의 가족사 및 일본 조총련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으리라.

양영희 감독은 1964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일본이 패망하기 전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오신 분들. 즉 양 감독은 흔히 말하는 재일교포 2세다. 위로는 12살 위인 큰오빠 건오, 10살 위인 둘째 오빠 건아, 그리고 8살 위인 막내 오빠 건민이 있다. 늦둥이 막내딸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패망 후 곧바로 우익과 좌익으로 나뉘어 싸웠던 한국처럼 일본 내 한국 사회도 둘로 갈라졌다. 북한을 따르는 조총련과 대한민국 정부를 따르는 민단. 양 감독의 부모님은 제주 4.3 사건의 기억 등을 안고 자연스럽게 조총련에서 일을 하게 된다.(뭐 더 복잡한 사정 등이 있었겠지만 여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 정도.... 그리고 분단 직후에는 북한이 더 잘 살았으니까...) 아버지는 열성적으로 조총련 일을 해서 오사카 지역의 간부로 성장한다.
 
장남 건오가 대학생이 됐을 무렵, 70년대 초반 정도 됐으려나. '귀국사업'의 열풍이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에게 몰아닥친다. 말 그대로 북한에 사람을 보내 살게 하는 것이다.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귀국사업'이 되겠지. 특히나 조총련 간부들은 모범을 보여야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먼저 건아와 건민이 북한으로 건너간다. 그 때 둘의 나이 열여섯, 열넷.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양 감독은 만경봉 호를 타고 떠나던 오빠들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둘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 지, 그 땐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북한에서 지령이 와 건오까지 북한으로 가게 된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자유를 사랑하던 건오 오빠는 자신이 평생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될 거란 걸 알았을까.

그리고 펼쳐지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당연히 북한으로 간 세 오빠는 힘들게 살고 있고. 일본에서의 자유를 모조리 박탈당한 채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양 감독은 가족 방문의 일환으로 그래도 북한 방문이 가능해 열일곱 살 때 처음 방북한 이후 몇 번 더 가서 오빠들을 만난다. (조총련과 북한 간에 방문이 가능한 줄은 몰랐다. 이것도 90년대 들어와서는 경제 제재 때문에 아예 막혔다고 한다.) 그렇게 갈 때마다 조카들과 오빠들의 삶을 찍은 영상이 모인 작품이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이다. '디어 평양'의 개봉 이후 양 감독은 조총련의 제재로 이제 더 이상 북한에 가지 못한다. 오빠들을 만나는 건 영영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북한'이란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의미가 있는 책이다. 거기다 북송사업, 귀국사업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진 말도 안 되는 이산가족의 아픔까지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 아픔을 속으로만 감추지 않고 이렇게 드러낸, 양 감독의 용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언제쯤 ,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념의 대립으로 사람들의 삶이 망가지는 게 멈출 수 있을지. 전쟁, 이념, 폭력, 욕심. 존 레논의 'imagine'이 꿈꾸던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