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다크 서티] UBL is dead. 요새 보는 것



'노 이지 데이'를 읽지 않았다면 보지 않았을 영화였다. 개봉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굳이 영화관에서 찾아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박찬욱의 '스토커'를 보지 않았고 타란티노의 '장고'가 개봉했기 때문에 그 둘을 보는 게 더 시급한 문제였다. 하지만 얼마 전 읽은 그 책 때문에 멀고 먼 이대까지 가서 이 '제로 다크 서티'를 봤다. 둘 다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과 영화다. 2011년 5월 벌어졌던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 이른바 '제로니모' 작전 말이다. 직접 작전에 참여해던 SEAL 대원이 쓴 '노 이지 데이'가 자신의 SEAL 라이프 중의 하나(물론 가장 큰 사건이긴 했겠지만)로 이 작전을 설명하고 있는 반면, '제로 다크 서티'는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빈 라덴(이하 UBL)을 잡기 위해 어떤 노력(악랄한 고문도 많았지만....RIP...)을 기울여왔는지를 묘사한다. 오로지 UBL을 향한 여정이다.


9.11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잇따라 일으킨다. UBL과 알카에다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미국.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위치한 CIA 지부는 UBL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주력하는 곳이다. 그 곳에 마야가 온다. 자원해서. 오자마자 알카에다 조직원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고문을 목격하고 힘들어하지만 UBL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만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오는 거라고 믿는 그녀는 곧 가장 열정적으로 UBL을 쫓는 요원이 된다. 

(영화 속에서 CIA의 '블랙 사이트'라는 곳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 시작 후 알카에다의 자금책으로 의심받는 알마드(?)가 고문받는 곳도 파키스탄의 블랙 사이트다. 9.11 이후 CIA가 세계 곳곳-주로 동유럽 국가라고 의심되고 있다-에 만든, 거의 치외법권 수준으로 테러범(으로 의심되는)들에게 고문을 자행한 곳이라고 한다. 미국 정부와 CIA는 이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구글에서 'CIA black site'를 검색하면 그곳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온갖 이미지가 넘실댄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블랙 사이트의 폐쇄를 명했다.) 

영화는 내내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언제 어디선 폭탄이 터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9.11 이후 알카에다가 자행한 테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2005년 런던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버스 테러, 중동 곳곳에서 미국인과 서양인을 상대로 자행된 무차별 총격과 테러, 2008년 파키스탄 매리어트호텔 테러(마야는 이곳에서 직접 테러를 겪는다.) 등이 고스란히 나온다.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미국의 블랙 사이트 장면 때문에 카메라가 중립적인 위치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테지만 일단 이 영화의 목적은 UBL을 잡는 것이기에 흐름상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그 중 가장 관객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건 마야의 CIA 동료(이름을 모르겠다. 편의상 A)가 폭사한 자살폭탄테러다. 요르단에서 의사를 하고 있다는 알카에다 조직원이 직접 알카에다의 회의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CIA에 보내며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다. 긴가민가 하지만 A는 이 만남이 UBL의 향방을 포착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해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아프간인지 파키스탄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미군 기지에서 만나기로 한 이들. A는 이 만남을 위해 케익까지 만들지만 결국. 차를 몰고 온 이들은 자살폭탄테러범이었다. A를 포함한 6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 7명이 부상. 이 사건은 CIA 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으로 남는다.

마야는 큰 충격을 받지만 그럴수록 UBL에 대한 의지는 더 커져만 간다. 유일한 단서는 UBL의 집사로 알려진 아부 아흐마드 알 쿠와이티를 쫓는 것. 그가 죽었다는 증언도 있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CIA 자료에 그의 사진이 있었다. 죽었다고 알려진 이는 그의 형. 마야와 그의 동료 댄은 쿠웨이트 정보통에게 큰 돈(최신 람보르기니...ㄷㄷㄷ)을 써서 알 쿠와이티의 어머니 전화번호를 알아낸다. 그가 어머니에게 전화하는 것을 도청해 위치를 파악하겠다는 것. 눈부신 CIA의 정보력으로 알 쿠와이티가 있는 곳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3층짜리 안전가옥이라는 것을 알아낸 마야. 그는 당장 쳐들어가기를 원하지만 CIA와 미국 정부는 보다 확실한 정보를 원한다. 그 가옥에 UBL이 확실하게 있는지의 여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조심성 많은 UBL답게 절대 위성에 포착되지 않는다. 산책도 큰 나무 밑에서만 해 전혀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이런 과정이 영화가 아니라 실화라는 게 참... 보면서도 후덜덜덜했다.)

점점 시간이 흘러가는 게 초조한 마야. 벌써 그 안전가옥을 발견한 지 120일이 넘어가는 상태였다. CIA 내에서 'UBL에 미친 년' 취급을 받기까지 한다. 작전을 위해 아프가니스탄 공군기지로 파견된 SEAL 대원들도 반신반의다. 하지만 결국 마야의 노력이 빛을 발했음일까. 2011년 5월 1일, 마침내 '제로니모' 작전의 허가가 떨어진다. 작전 개시는 바로 그날 밤. 자정부터 30분의 시간이 SEAL 대원들에게 주어진다. 결론은. 물론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다.

안전가옥에 침투한 대원들의 모습.
실제로 SEAL 대원들은 적외선투시경(온통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을 쓰고 작전에 임했다고 하는데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도 적외선카메라로 촬영을 했단다.
덕분에 진짜 현장에 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마구 든다.
영화의 마지막 30분. 으아아아. 심장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결말을 알면서도....(부끄)



맨 왼쪽이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요르단에서 촬영을 했단다. 멋지다. 힝.



영화의 마지막 장면.
미션을 클리어하고 홀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른 마야.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눈에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157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 실화였기 때문일까.
(물론 난 중간에 화장실에 한 번 다녀와야 했다. 끄응.)
UBL은 죽었다. 하지만 여전히 알카에다는 건재하고 중동의 평화는 요원하다.
미국이 개입했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내정은 여전히 불안하다.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가 모두 뒤섞여버린 21세기.

마야는 UBL만 잡으면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이라 생각했을 터다.



20130323, @아트하우스 모모


덧글

  • 세스크 2013/03/25 09:01 #

    영화밸리에서 보고 왔습니다 문과는 크게 상관은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전 오사마빈라덴을 UBL이라고도 하는지 처음 알았네요

    영화는 참 좋게 봤는데 노 이지데이 책도 읽을만 한가요?
  • 로까쏠 2013/03/25 14:40 #

    음. 책은 SEAL부대 얘기가 좀 더 많아요 ㅎㅎ 빈라덴 얘기가 중요하긴 하지만요. 제로니모 작전 그 날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책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정말 세세하게 나와 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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