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만들어지는 지도 몰랐던 영화였다. 지난달 개봉을 앞두고 여기저기 홍보가 되면서 알게 된 영화다. '베를린'을 작년부터 목빠지게 기다려온 것에 비하면 전혀 기대없이 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가진 정보라고는 황정민, 최민식이 나온다는 것과 감독인 박훈정 씨가 '부당거래'와 '악마를 보았다'의 작가라는 것. 뭐 그 정도로도 내가 관람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고보니 '부당거래'에는 황정민이 나왔고 '악마를 보았다'에는 최민식이 나왔군. 거기다 류승범도 카메오로 출연했다는데 안타깝게도 발견하지 못했다. 난 그런 눈썰미가 매우 떨어진다.
트위터는 안 하고 페이스북은 눈팅만 하는 내게 SNS 세상 속 영화평은 먼 나라 얘기다. 요새 내게 영화에 대한 평가를 주는 정보통은 한겨레에 일주일에 한 번 실리는 한줄 감상평과 이동진 씨의 블로그다. 이동진 씨 블로그를 우연히 네이버질 중 알게 돼 소소하게 이용 중이다. GV 정보 등도 올라오던데 순식간에 매진이라 뭐 근처가 가 보지도 못했다. 이 분이 영화 쪽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일가견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레 한줄 감상평에서 '신세계'는 크게 좋지 않았다. '기대 엄청하고 봤는데 실망이에여' 부류의 평가가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봐서였을까. 영화는 꽤 괜찮았다. 오빠도 내 말을 듣고 봤더니 오히려 더 재밌었다며 좋아했다. 감상평에 크게 좌우받지 않는 우리긴 하지만, 은근히 팔랑귀는 팔랑귀기 때문에.

포인트 1. 황정민의 과잉연기
참 좋아하는 배우인 황정민. 여기서도 제 몸에 맞는 역할을 잘 수행한다. 어떤 역할이든 10년 입은 옷처럼 자기에게 딱 맞게 바꾸는 게 황정민의 능력인 것 같다. 화교 출신 조폭을 연기하는 그는 전라도 사투리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성한다. 사실 중국어는 잘 모르기 때문에 억양이나 성조 같은 게 완벽한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듣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관객 귀에 자연스럽게 들리면 땡 아닐까. 과잉연기라는 느낌이 많이 들긴 했지만(특히 저 화이트 슈트 입고 슬리퍼 신고 인천공항에 들어서는 등장 신의 과잉이란....조금 민망할 정도였다.) 말이다.
평소에는 장난끼 많고 능글능글하다가도 일이 있으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조폭으로 돌변하는 정청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해냈다. 조직에 침투한 짭새를 삽으로 내리찍고 칼로 목을 그어버리는 신은 강렬했다. 이중구를 면회하고 돌아서는 장면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동네 형에서 무자비한 조폭으로 변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건 또다른 재미다.

포인트 2. 절대 善은 없다
이런 누아르(라고 표현하면 되나?) 영화에 큰 지식이 없는 나지만 선악 구분의 필요성은 알고 있다. 권선징악의 결론은 뻔하지만 관객들의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일으켜 보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이 '신세계'에도 경찰과 조폭이라는 두 집단의 대립이 있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경찰은 선, 조폭은 악일 터다. 하지만 감독은 이 부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골드문의 마피아화를 막기 위해 이자성을 스파이로 침투시키는 의도는 분명 나쁘지 않지만 강과장은 너무 나갔다. 그 목표에 집착하다보니 자성의 삶은 물론 자신의 삶까지 스스로 파멸시켜버렸다.
거기다 자성을 마킹(감시)하기 위해 붙인 바둑 선생과 다른 경찰 프락치(이렇게 써도 되나 모르겠지만 여튼....)의 목숨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관객들과 멀어진다. 목적을 위해서 부하들의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리는 강과장에게 감정이입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속 자성과 강과장의 관계는 언제나 뾰족뾰족하다. 같은 경찰이고, 강과장은 분명히 자성의 상관이지만 자성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전혀 호의적이지도 않다. 카메라는 강과장의 부탁에 고심하는 자성을 끊임없이 비춘다. 그 속에서 관객은 도대체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할 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 지점이 '신세계'의 무대다.

포인트 3. 모르겠다
뭔가 더 멋들어지게 쓰고 싶었으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송혜교(미쳤나봐...송지효!!!), 아니 송지효 짤은 그냥 보너스. 구글 검색 만세! 마지막에 꽤나 반전이라면 반전이 일어나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간파당했을 듯. 송지효 역할이 조금 제한적이라 아쉬웠달까. 좀더 많은 역할, 생생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몇 신이 나오지도 않는다. 이정재와 마주앉은 송지효를 보면서 '쌍화점'에서 조인성과 함께 하던 송지효를 떠올린 건 나뿐이었을까.
6년 전 여수 장면은 여러 가지 해석을 불러올 수 있을 듯.
아. 덧붙이자면 왜 조폭들은 계속 전라도 사투리만 쓸까. 여수 출신이라는 설정이 있긴 했지만 사실 거슬렸다. 전라도 출신도 아니고 나는 오리지널 경상도 출신이지만 이런 영화가 '전라도 조폭'이라는 편견을 계속 재생산할 거라는 걸 알기에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뒷방 늙은이로 나오는 노친네들까지 은근히 전라도 말을 구사하는 장면은 솔직히 별로였다.
20130224, @ 청량리 롯데시네마




덧글
그리고 이번 영화보고 여수에 화교가 많다는건 첨 알았네요..